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대 그리스/역사 (문단 편집) === 마라톤 전투와 그리스의 승리 === [include(틀:상세 내용, 문서명=마라톤 전투)] [[파일:07e1196b0cceb1aede20f71fbd509edc.png]] [[마라톤 전투]]의 상상 기록화. 기원전 490년, 이전 마르도니우스의 패배로 속에서 칼을 갈던 다리우스는 제대로 아테네와 에레트리아를 손봐주기 위해 대군을 파병했다. 군사령관은 각각 메디아 출신의 다티스와 아르타페르네스가 맡았다.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당시 페르시아 함대가 거느린 삼단노선 [[트리에레스]]의 수만 무려 600여 척에 이르렀다고.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군대의 수는 쓰지 않았지만 후대 플루타르크는 30만 명, [[플라톤]]은 50만 명까지도 추정했다. 물론 현대 학계에서는 과장으로 보고 실제로는 대략 2만 5천 명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고 있지만 어쨌든 몇 천명만 됐어도 상당한 군사력이었던 고대 세계에서 당시 페르시아 원정군이 엄청난 대군이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. 페르시아 군사력의 핵심이던 [[기병]]은 대략 1,000여 명에서 3,000여 명 정도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. 헤로도토스는 당시 페르시아 원정군이 수많은 민족들로 이루어진 혼성 군대라고 썼다. 온갖 지방들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아 왔으니 군장은 물론이요 군복도 통일되지 않았다고. 페르시아 대군은 일단 수도 수사에 모인 다음 동진해 [[킬리키아]] 해안가로 향했다. 킬리키아에서 출항한 페르시아 군대는 [[로도스]], [[사모스]], [[낙소스]] 섬 등을 거치며 그 곳의 그리스계 주민들을 노예로 삼으며 거침없이 전진했다. 또한 그리스인들의 성지였던 [[델로스]] 섬에도 들러 [[아폴로]] 신전에 300 달란트의 향유를 태워 승리를 기원했다. 그리스 본토에 상륙한 페르시아군의 첫 목적지는 아테네와 함께 최대 적국들 중 하나이던 에레트리아였다. 에레트리아는 급작스런 대군에 놀라 우왕좌왕하다가 제대로 상륙 저지도 하지 못한 채 공성을 당했고, 결국 몇 달 후 내부에서 배신자가 나오면서 맥없이 함락당했다. 에레트리아를 점령한 페르시아 군대는 신전과 도시를 약탈한 다음 도시를 깔끔하게 불태웠다. 에레트리아가 떨어지자 이제 페르시아 군대의 남은 목표는 바로 [[아테네]]였다. 에레트리아 약탈을 마친 페르시아 함대는 남쪽 아티카 해변으로 내려가 아테네에서 약 25km 떨어진 마라톤 만에 상륙했다.[* 옛 아테네의 참주 [[히피아스]]의 아이디어였다.] 아테네는 이들을 막기 위해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보내[* 보통 사람들이 이 전령이 마라톤 전투 이후 시민들에게 승전보를 알리고 죽었다고 알고 있는데, '''전혀 사실이 아니다.''' 페이디피데스는 아테네에 승전보를 전하러 간 것이 아니라 스파르타에 구원군을 요청하러 갔고, 탈진해서 죽지도 않았다.] [[스파르타]]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스파르타도 카르네이아 제전과 반란 진압으로 사정이 바빠 도와줄 수 없었다. 결국 아테네는 인근 도시 플라타이아이의 도움만을 받아 페르시아 대군과의 일전을 준비했고, 결국 기원전 490년 9월 12일 [[마라톤 전투|마라톤 평원에서 대격돌한다.]] 그리스군은 막강한 [[팔랑크스]] 전술을 이용해 가볍게 무장한 페르시아 군대의 우익을 돌파하며 승기를 잡았고, 페르시아 군대는 어쩔 수 없이 후퇴해 함대로 돌아갔다. 페르시아군이 함선을 타고 돌아가 아테네 본토를 때릴 것을 우려한 그리스군은 '''군대 전체가 3시간 만에 30km를 주파해 아테네로 돌아갔다.'''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[[마라톤]]의 시작은 아마 이 일화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. 다리우스 1세는 마라톤 전투의 패배와 이집트에서의 반란이 겹치자 군대를 철수했고, 이렇게 1차 그리스 침공은 그리스의 승리로 끝이 나게 된다.[* 다만 페르시아가 이 전쟁에서 아예 패배하고 손실만 본 건 아니다. 페르시아는 아테네는 아니어도 핵심 적국이던 에레트리아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고 영토도 늘렸다. 전쟁 승리로 인해 아테네의 민주정이 더 오래 살아남는 기틀이 마련된 것은 확실하지만 아예 생각하는 것처럼 페르시아가 전쟁의 패배로 괴멸적인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